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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하고 두려운 현실 속에도 한 줄기 희망이 [이상희/한국일보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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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그림책박물관
    2017-01-10
    조회수 : 34

    미디어 : 한국일보

    원문 : http://www.hankookilbo.com/v/df5d6053c8374a0ebe1036359565968e

    필자 : 소윤경. 그림책 작가

    등록일 : 2017.01.06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숀 탠의 그림책 ‘빨간 나무’는 이런 글줄과 함께 검은 나뭇잎이 천정에서 침대로 떨어지는 끔찍한 아침을 그려 보인다.

     

    늘 조야하게 여기면서도 적잖이 의지하게 되는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어린이 독자를 배려하는 번안용일 뿐 원서의 텍스트가 서술하기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는 날’, 신체 비례 상 두상이 좀 커 보이는 덕분에 아이로 간주되는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검은 나뭇잎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침실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바깥세상은 더욱 기괴하다. 눈이 상한 거대한 물고기가 아이를 뒤쫓아 그림자를 드리우고, 사람들은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눈 먼 허깨비들처럼 걷고 있다. 이제 아이는 어디로 무엇을 찾아가게 될까.

     

    어릴 때부터 공룡ㆍ로봇ㆍ우주선이 등장하는 이야기 그림을 숱하게 끄적이며 낙서 더미를 쌓아 올리는 한편으로 화학ㆍ물리학ㆍ역사ㆍ영문학 등 다방면을 즐겨 공부하고 탐구해온 숀 탠이 원래 이 그림책에 담아내려 했던 것은 우울과 두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예술적 이미지였다. 절망이 쌓이고 깊어지는 아이의 내면이 표현된 일련의 그림들은 서사를 이루기보다 장면장면 다채로운 컬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나날의 크고 작은 절망에 시달리는 성인 그림책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책은 실제로 우울증 임상 치료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진 바닷가에서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구식 잠수 마스크를 쓰고 유리병 속에 들어앉은 아이, 거대한 건축물의 기계 부품 같은 제복의 군상들 속에 있는 아이, 다닥다닥 엉겨 붙은 건물과 건물들 사이 비상 사다리를 오르는 아이… 그와 같은 시간을 거대한 암몬 조개(암모나이트) 껍질에 하염없이 새기는 아이… 그러다 도시를 덮친 해일에 휩쓸린 채 홀로 보트를 타고 생존 전쟁을 치르는 아이, 창밖으로 지나가는 멋진 풍경을 동경하는 아이, 낯선 길에서 커다란 주사위를 들고 향방을 가늠하는 아이… 그러나 길을 잘못 찾아든 듯 ‘나는 누구인가?’ 팻말을 목에 건 꼭두각시가 되어 기묘한 무대 위에 서있는 아이, 담벼락에 자기를 그려보는 아이, 거대한 공동묘지와도 같은 황무지에 뚝 떨어진 아이….

     

    아이는 ‘하루가 끝나가도 아무런 희망이 없’이 다채로운 절망의 아수라로부터 간신히 살아 돌아와 첫 장면의 그 방을 연다. 그리고 놀란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다. 절망의 검은 잎으로 그득했던 방이 말끔히 치워지고 검은 색 아닌 오렌지 색 잎이, 첫 장면 침대 머리맡의 액자 속에서부터 절망의 편력이 이어지는 모든 장면마다 숨어있던 그 오렌지 색 잎이, 뿌리 내린 채 선명하게 싹트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마법이 펼쳐진 듯 경이롭고 호화롭다. 오렌지 색 잎 무성한 나무가 아이 키보다도 커져서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그 모습으로’ 방안 그득히 빛을 뿜어낸다. 이 찬란한 기운생동 이미지는 작은 씨앗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싹을 틔우는 재생과 복원의 상징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는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타오르는 열망과 갈망, 그 총화의 이미지로 읽힌다. ‘처음부터 저 혼자서 타며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고독하게 꿈꾸는 불꽃’(G. 바슐라르)을 수백 만 명이 한꺼번에 가슴 앞에 두 손 모아 들어올린 그림으로 타오르는 것이다.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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