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도자료
그리고 12시, 더 이상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비진도를 등에 지고 있던 고래가 깨어나 포효하자 섬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아이와 토끼인형은 가족을 찾기 위해 고래를 따라가지만 가족은 찾을 수 없고 둘을 위협하는 갈매기를 피하기에 급급하지요. 연이어 세상의 모든 고래가 깨어나고 먼바다에서 시작된 고래섬들의 용트림은 거대한 쓰나미를 만들어 육지의 모든 것을 덮칩니다. 바다가 온 세상을 쓸어내고 나서야 고래의 움직임은 느려지고 정적이 흐릅니다. 바다는 서서히 몸을 푼 고래들의 잔해로 가득해지고 아이와 토끼인형은 숨죽이며 이들을 지켜보는데, 그때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 속에서 정어리가 나와 떼를 이루어 수면으로 향합니다. 정어리 떼를 쫓아 고개를 든 아이의 눈에 배 한 척이 보입니다.
희망을 안고, 다시 9시 47분
아이와 토끼인형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까스로 배에 오릅니다. 비진도를 향하며 가족과 함께 탔던 바로 그 배입니다. 아이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오고 토끼인형은 갈매기가 낚아채어 하늘 저쪽으로 멀어져 가고 흠뻑 젖은 아이가 화장실에서 나옵니다. 엄마는 토끼인형을 안고 아이를 기다리며 서 있고, 시간은 다시 9시 47분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과 상상, 그 경계의 자유로움에서 맛보는 전율
이기훈 작가는 지구환경에 대한 경고와 인류를 향한 희망을 그만이 할 수 있는 역동적이면서도 극도로 세밀한 사실주의적 표현에 담아냈습니다. 지구에 종말이 다가오고 그 속에서 희망의 방주를 발견하는 아이가 겪는 상상과, 환경위기에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인류의 현실은 ‘시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매끄럽게 넘나듭니다. 현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책을 보는 어느 지점에서 상상으로 넘어갔을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이야기의 끝부분에 이르면 그때서야 독자는 상상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현실은 또 타임 루프를 통해 이야기의 앞으로 이어지며 상상인 듯 현실인 듯 모호함 속에 머물게 되는 세련된 장면 구성과 연출에 그야말로 짜릿함과 탄성을 짓게 만들지요.
작가의 전작인 『양철곰』과 『빅 피쉬』가 건네는 지구를 배반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와 『알』에서 보여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설정이 이번 작품인 『09:47』에서는 모두 한 발 더 나아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내용 전개와 표현력, 그리고 메시지 등의 측면에서 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는 이기훈 작가의 작품 중 최고 걸작이라 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
전작인 『알』에서부터 상상으로 들어가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관습적이지 않고 독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로 상상을 경험하게끔 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생생한 꿈과 현실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뒤섞이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 여행의 경험이었던가요! 그 즐거움을 기억하며 장자의 호접지몽과 같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상상이 현실 깊숙이 들어와 상상이면서 실제이고, 실제이면서 상상인 경험과 마주하는 여행을 책으로 펼쳐보고자 했습니다. 『09:47』을 통해 익숙하지 않음이 선사하는 신선함 속으로 들어가, 상상과 현실의 경계 어딘가에서 아이와 토끼와 함께 떠나는 모험을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09:47』은 미래와 과거를 배경으로 했던 『양철곰』과 『빅 피쉬』에 이어 현재를 다루며, 십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욕망 삼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입니다. 이번 책을 창작하는 지난 5년의 기간 동안 많은 시대의 변화들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팬데믹 상황이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굴레 속에 우리의 욕망을 더욱 부추기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허기가 오늘의 현실을 만들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자명한 사실이지요.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 상황 속에서 『09:47』으로 욕망 삼부작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통해 다가올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그럼에도 희망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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